You are currently viewing 흙수저 켈리 최의 즉석 초밥으로 유럽에서 성공
켈리 최

흙수저 켈리 최의 즉석 초밥으로 유럽에서 성공

켈리 최는 프랑스 파리에서 즉석 초밥을 팔아 성공한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의 자존심인 즉석 초밥으로 미식의 나라 프랑스 그리고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머 쥐었다. 일본 초밥 장인과 맥도날도 유럽 지부 CEO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고 자신의 초밥 사업에 적용했다.

파리에서 초밥 도시락 파는 켈리 최의 책

이미 부와 명예가 있는 켈리 최가 책을 낸 것은 책장사를 하려기 보다는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책 제목은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이다. 다 아는 내용을 생동감 있게 상기시키고 실제로 발을 떼고 움직여 실천하라는 고마운 조언과 경험이 담겨 있다.  

 나도 그 책 샀고 읽었으니 내 꿈을 실현해 달라고 책에게 떼쓰면 안된다.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를 다지고, 실천하는 나의 노력의 시작을 위해 있는 책이니 역시 행동으로 옮기고 볼 일이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도착한 일본과 파리

와이셔츠 공장에서 주경 야독

켈리 최는 1969년 전북 정읍 작은 방한간 흙수저 집안에서 육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한국 이름은 최 금례이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생활고를 감당하는 상황이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집안 사정으로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와이셔츠 생산 공장이었다.

남들이 하루에 와이셔츠 1백 장을 만들때 그녀는 두 배를 만들어내는 노력을 했다. 혼자 벌어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패션 디자인이 일본에서 건너온다는 것을 알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과 프랑스에서 좌절

일본에서 공부해보니 일본 패션 디자인은 대부분이 파리에서 온다는 새로운 사실에 다시 자극받아 호기롭게 날아간 파리는 일본과 달랐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일단 프랑스에서 언어 장벽은 높아도 너무나 높아 기가 죽었다. 

 직장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학업에 다시 도전할 것인지, 미국으로 유학지를 변경할 것인지 번민하던 시기에 친구가 자기 사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계획한 대로 안된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켈리 최도 계획이 변경되었다. 원래는 패션디자이너가 되고자 파리에 갔으나 언어장벽이 너무나 높아서 좌절하고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다 좋아한 일은 아니었지만 친구가 하던 일을 돕다가 큰 돈을 벌었다. 경기를 타는 일이어서 10억빚을 지고 칩거했다. 그나마 파리에 이미 집을 사둬서 그것이 비빌 언덕이 되었다.

 그리고 관심을 초밥으로 전향해서 디자이너가 되는 걸 관두고 초밥도시락 사업가로 거듭났다. 

친구와 사업 성공과 실패 후 우울증으로 2년 칩거

머리도 식힐 겸 시작한 일은 승승장구했다. 좋은 집과 고급 차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경기를 못타면서 사업이 기울었고, 빚만 10억 원이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2년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혔다. 

 그러다 어릴 때 작고 초라한 방 한 칸이 전부였지만, 가족 누구도 가난하다고 서럽지 않던 기억이 났다.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딸의 행복만을 소원하는 엄마가 떠오르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미치도록 좋아한 초밥과 초밥 장인 야마모토

10억 빚과 초밥으로 전향

빚 10억 원에 공부는 사치였기에 다시 일을 해야 했다. 미치도록 좋아서 할 수 있는 일, ‘초밥’이 떠올랐다. 세계 최고의 초밥을 만들려면 세계 최고의 초밥 장인 야마모토 선생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트에서 파는 초밥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초밥이 되지 말란 법 있나요?” 장인에게 여러 번 거절당해 생겨난 단순한 오기가 아니었다.

 초밥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한시간씩 줄 서서 먹는 최고급 초밥을 1만 명, 10만 명, 1천만 명에게 먹여보고 싶었다. 장인은 여러 번 거절하다가 무일푼에 가까운 상황을 짐작하고도 저 정도 열정이라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켈리 최의 스시 데일리. 유러저널

 그리하여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생선 손질법, 초 만드는 법, 재료 거래처, 기타 레시피 등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초밥사업 확장 노력과 유럽 맥도날드 CEO 하네칸

프랑스에서 회사가 안정되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했다. 유럽 다른 나라의 법과 문화의 장벽을 넘기 위해 또다시 도움이 필요했다. 요식업계 최고의 글로벌 프랜차이즈는 바로 맥도날드이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유럽 맥도날드 CEO까지 오른 드니 하네칸 회장을 꼭 만날 거라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다. 효과가 있었다. 드니 하네칸의 수행 비서를 역임한 친구를 둔 친구가 연락을 해온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네칸 회장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초밥 매장으로 찾아와 글로벌 기업으로서 해외 가맹점 구축 관련 법적 문제, 포장, 새 메뉴 개발, 선전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선한 의지와 진솔함이 무기이다.

켈리 최는 파리에 정착했다. 프랑스인과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다. 남편도 같은 회사에서 초밥 사업을 한다. 켈리 최는 다이어트와 운동도 열심히 해서 50대에 몸짱이 되었다.

초밥이든 김치든 뭐든 몹시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걸 너무 부러워 할 것도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는 모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저마다 소중한 개인이고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래서 남이 잘되도록 보조하는 일도 충분히 가치있다.

 본인 삶이 불행한 사람들은 남의 노력은 운이라 투덜거리고 본인은 그저 운이 따라주지 않은 가여운 사람이라고 연민에 빠진다. 켈리 최가 한 노력의 100분의1이나 해보고 그런 말을 하면 토닥여 줄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켈리 최는 학벌없이도 고 스펙없이도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자신이 셔츠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고 남들의 두배 이상 노력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초밥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하고 일본 초밥 장인을 만나서 비법을 전수 받았다. 사업을 확장하고자 맥도날드 유럽 지부 CEO의 조언을 얻어냈다.

solidarity

서로 웃을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합니다. 글을 읽고 쓰며 서로 좋은 영향력 권역에 있을 수 있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