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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실패에 엄격한 한국인과 더 관대한 서구인

서구권은 실패자라고 낙인찍지 않는다. 실수도 자산이라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 실패와 실수를 권장한다.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이 있을 터이니 그것을 경험못한 사람보다 더 잘 할꺼라는 발상인 것이다.

실수와 실패는 서로 다른 단어이지만 실수가 잦거나 치명적일 경우로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에서 둘다 한국에서 환영받는 단어는 아니다.

1. 실수 실패에 대한 한국인의 자세와 원인

한국인은 특히 실패에 대해 인색하고 엄격하다. 일제 시대 핍박과 한국 전쟁후 폐허되고 분단된 좁은 영토에 천연자원은 적고, 인구밀도는 높은 환경도 실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풍토에 한몫 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실수할까봐 실패할까봐 노심초사하느라 새로운 시도에 주춤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강철 멘탈이라 스스로 격려할 수 있거나,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적과 같아서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모국어를 구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가. 아기가 태어나서 엄마라는 단어를 깨끗하게 발음하기까지 무려 평균 500번을 연습하더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500번의 시도, 실수, 실패했으면서 잊어버린다. 

두 돌 지난 첫손녀를 돌봤던 분이 말씀하셨다. 집안에서 놀던 아이가 한참 안보여서 찾아보니 구석에서 소리도 못내고 울고 있었다. 주변에는 깨진 컵이 하나 있었다.

너무도 측은해서 꼭 안아주셨단다. 누가 그 아이를 다른 작은 일로 크게 꾸짖은 적이 있었나. 어째서 어린애가 그런 작은 실수에 벌써부터 그토록 낙담해서 혼자 운단 말인가. 

2. 실수 실패에 더 관대한 서구권

이와는 무척 다르게 서구문화권은 실수 실패에 유연하고 권장하는 분위기이다. 미국의 큰 기업에서 프로젝트에서 실패해서 수십억원이 넘는 손실을 끼친 직원에게 격한 비판과 해고 대신에 기회를 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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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실수를 바탕으로 배운 것의 가치를 알고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더 큰 좋은 성과를 낸 사례들이 있다.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이 있을 터이니 그것을 경험못한 사람보다 더 잘 할꺼라는 발상인 것이다.  

전세계 엘리트들이 모이는 미국의 명문대인 하버드와 스탠퍼드에서는 신입생에게 실패학을 이수하게 한다. 명문대에 입학할 정도면 실수를 크게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학에 와서 더 잘나고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서 절망감을 느끼고 자살하는 사례가 꽤 많았다. 실패학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데 도움이 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격려한다. 

 애플의 디자인 총책임자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실패작을 만드는 것을 오히려 기뻐한다고 한다. 왜냐 하면 틀렸다는 것은 곧 새롭게 고칠 점을 발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독일 자동차 기업 BMW에서는 ‘이달의 가장 창의적인 실수’를 뽑아 상을 준다. 도전했기에 실패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혁신도 따라온다.그래서 실수 상을 준다.

핀란드 게임회사 슈퍼셀에서 늩 수시로 ‘실패 축하 파티’를 연다. 실패가 나오면 잘된 부분과 잘못을 분석하고 토론한다. 그리고 샴페인을 터뜨린다.

 실패는 무능이나 불성실의 결과가 아니고 무언가를 배우는 계기가 되므로 서로 축하한다. 실패가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좋은 학습이다. 그 배움의 과정을 축하하고 공유한다.

인생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고 불공평하고 불공정해 보인다. 실수와 실패를 권장하는 사회가 있는 반면 한국은 실수 실패에 대해 가차없는 문책이 따라서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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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그런데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한다. 나는 극복했다” 윤여정님의 말씀을 옮겨본다. 스스로 자신을 격려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동시대 사람이 덜 서럽게 느끼도록 격려의 한마디가 감로수처럼 내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구에서는 실패와 실수에 대해 한국보다 관대하다. 실패했을 때 대처 양상에 따라 향상되어 더 나은 다음을 만들 수 있다. 실수와 실패는 딛고 일어나라고 있는 것이다. 실패후 좌절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했다고 인생끝이 아닌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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