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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과 타이거 우즈

흙수저 자수성가 PGA 챔피언십 양용은과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양용은의 등장은 매우 놀라웠다. 타이거 우즈는 당시 ‘메이저 역전 불패’로 유명했다. 그러나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양용은에게 졌다. 양용은에게 ‘호랑이 잡는 사냥꾼’이라는 애칭은 때 생겼다.

타이거 우즈는 부모님이 강력하게 밀어주었다. 특히 타이어 우즈 아버지의 아들 사랑은 유명하다. 그러나 양용은 그런 배경이 전혀 없이 늦은 나이에 골프장 볼보이로 시작했다. 

1.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매우 좋은 가정환경

타이거 우즈(1975년 12월 30일생)의 아버지 얼 우즈(1932년생)는 아들에게 걸음마보다 골프 스윙을 먼저 가르쳤다. 챔피언이 되는 방법보다 인생의 가치에 비중을 두고 교육시켰다. 

 1966년 얼 우즈는 미군 장교(Green Beret)였고 태국에서 근무하다가 미군부대에서 비서로 일하던 태국 여자 컬티다(Kultida, 1944년생)를 알게 되었다. 1968년 쿨티다는 미국 뉴욕으로 이민 왔을 때 은행원으로 일했다.

얼 우즈는 쿨티다와 뉴욕에서 재혼해서 43세에 우즈를 낳았다. 얼 우즈는 첫 결혼에서 이미 세 아들을 두었다. 당시에는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그러나 막내인 타이거에게만은 매우 자상했다. 타이거(호랑이)는 별명이고 본명은 Eldrick Tont Woods이다. 

 아기인 타이거에게 자신의 골프 스윙 자세를 보여주고 만 두 살이 되자 ‘아이언’이나 ‘우드’보다 ‘퍼터’를 먼저 만지게 해 스윙코치가 가르칠 수 없는 그린의 감각을 익히게 했다. 

 타이거가 군용 골프 코스에서 연습하고 놀게 했고 아마추어 골프로 안내했다. 타이거의 어머니는 유일한 자식인 타이거를 차에 태우고 코스를 오가며 운전해 줬고 경기마다 응원을 다녔다. 

 중국계 태국인 어머니의 조언으로 결승전에서 늘 검정 모자, 빨간 티에 검은 바지를 입는다. 오행 색으로 운세를 보강하기 위한 것이란다. 185cm의 장신에 별명은 호랑이, 옷 색깔로 인한 강력한 시각적 효과는 상대를 떨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타이거는 효자였다. 대회에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아버지가 옆에 계셨는데 지금은 계시지 않아 힘이 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버지 간호를 위해 대회 출전까지 미루어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가슴 깊이 추모한다.”

 참고로 타이어 우즈의 아버지는 흑인처럼 보이나 흑인+미국 원주민+중국인의 혼혈이다. 타이거의 어머니는 여느 태국인처럼 보이나 태국인+중국인+백인의 혼혈이다. 타이거 우즈의 전처는 백인 스웨덴인이다. 

 그래서 타이거 우즈는 흑인 골퍼가 아니라 흑인 떼고 그냥 최고의 골퍼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2. 흙수저 출신 양용은과 골프

타이거 우즈의 경우와는 매우 달리 양용은(1972년 2월 29일 제주출신)의 집안은 골프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골프를 부모에게 배우지 못했다. 어린 시절 우연히 tv에서 골프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바로 골프에 매료되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이라 부모님께 골프를 배우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골프 선수의 꿈을 품었다. 상황에 굴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의 소개를 받고 골프장을 찾아가 공을 줍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골프장에 일하다 보면 골프를 배울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군 복무는 보충역으로 마치고 골프장 볼보이로 일했다. 그러나 농부이신 아버지가 골프는 부자들의 스포츠라고 말하며 그런 알바는 그만두고 굴착기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그래서 건설사에 들어갔다. 다리를 다쳐서 핑계 김에 두 달 만에 그만두고 골프장으로 돌아갔다. 비록 전문 코치에게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일하고 남는 시간마다 스스로 골프를 익혀 나갔다. 

 자세나 기술은 프로 골프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흉내 내며 따라 했다. 연습하다 보면 해가 졌다. 조명도 없는 연습장에서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연습하고, 낮에는 잡일을 하는 고단한 생활을 했다. 이렇게 끈질기게 노력을 계속해나갔다.

 그 결과 1996년에 프로골프 선수 테스트를 통과했다. 같은 해 타이거 우즈는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향해 단숨에 세계 대회를 휩쓸었다. 양용은은 아시아인으로 첫 메이저 챔피언이자 PGA 투어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양용은이 PGA투어에서 타이거 우즈를 이기다
양용은이 PGA 투어에서 타이거 우즈를 이기다. 출처 golfwrx.com

바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메이저 대회에서 유일하게 역전을 거둔 것이다. 타이거 우즈는 당시 ‘메이저 역전 불패’로 유명했다. 누구도 앞선 그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양용은에게 무너졌다. ‘호랑이 잡는 사냥꾼’이라는 애칭은 이때 생겼다. 양용은은 두 가지 남다른 면모가 있다. ‘잡초 같은 근성’과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두둑한 배짱’이 있다.

나이가 들면 서글플 수 있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어 기대된다고 양용은 말했다. 만 50세 이상만 출전하는 미국 프로골프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최강의 무기는 바로 ‘나이’이다. 만 50이 넘으면 하루하루 유연성과 근육량이 급격이 떨어지는 때라고 한다.

 그래서 시니어 무대에서는 갓 출전 자격이 되는 선수가 곧바로 우승 후보 1순위가 된다. 30대가 20대를 이기기는 쉬워도 60대가 50대를 넘는 것은 어려운 것이 골프에서 선입견이었다. 

 이것을 독일 선수 베른하르트 랑거가 깼다. ‘랑거’바람이 14년째 부는 가운데 양용은이 만 50세가 되어 첫 등장했다. 양용은은 아시아 첫 메이저 챔피언이지만 이 대회는 막내가 되는 셈이다. 그의 돌풍이 기대된다. 

3. 골프

양용은의 등장은 골프는 돈이 많지 않고 부모라는 배경이 없어도 늦게 시작해도 전문코치의 도움이 없어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줬다. 

일조량이 적은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가 시작되었다. 골프는 여성에게도 좋은 운동이고 노인들이 손주들과 걸으며 하기 좋은 운동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골프장의 푸른 잔디밭은 언제든 바로 농경을 할 수 있다. 버려진 농토에는 농사를 바로 지을 수 없다. 골프 잔디밭은 관리를 하기 때문에 지력이 보존되어 불시에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

 식량난이 가중되어 식량이 무기가 되는 이 시대에 골프장의 푸른 잔디밭은 또 다른 의미에서 애국이다. 이러한 장점을 가진 골프에서 우리의 양용은 선수가 있어서 너무나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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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은 2009년 PGA 참피온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역전하며 우승했다. 양용은 등장 자체가 사람들에게 희망이었다. 즉, 골프는 늦게 시작해도 되고 돈이 많지 않아도 되고 부모라는 배경이 없어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줬다.

양용은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골프장 볼보이 알바로 골프를 처음 시작했다. 전문 코치에게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일하고 남는 시간마다 스스로 골프를 익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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