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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

고려시대 귀화 성씨 위구르Uyghur, 투르크Turk 후손 덕수 장씨, 베트남 왕족후손 화산 이씨와 막씨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 한국 조상과 코가 높고 형상이 다른 자가 씨름하고 있다. 그가 바로 서역인 흉노인( =훈족= 투르크족= 돌궐족)이다. 돌궐인은 한국인과 다른 인종이다. 기록에 의하면 돌궐인은 머리털이 빨강, 금색, 갈색 등 다양했다. 백인의 특징이다. 백인도 볕에 타면 피부가 갈색이 된다.

고구려 무덤 각저총의 씨름도 벽화도에 형상이 다른 외국인이 있다
고구려 무덤 각저총의 씨름도 벽화에 형상이 다른 사람(외국인)이 있다

1. 중앙아시아의 백인들(돌궐, 위구르  등)의 후손 덕수 장씨, 경주 설씨, 임천 이씨

지금도 중앙 아시아에는 조상대대로 이슬람교를 믿는 백인들이 많이 있다. 이 백인들이 돌궐, 위구르, 투르크 등등이다. 피부가 희고 형상이 백인종의 특징을 띠어 중국정부에 의해 ‘백족’으로 불린다. 

 바탕이 백인이어도 주변 중국인과 혼혈이 많이 되어 중국인의 얼굴을 한 경우도 많다.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의 구역에 한족을 대대적으로 의도적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위구르인의 근거지를 약화시켰다. 

 고구려는 돌궐과 손을 잡고 중국과 대항하였고, 고려때는 돌궐족이 귀화하여 한국의 성씨를 얻어 정착하기도 했다. 고려시대 원나라 공주가 고려왕실과 결혼하면서 흉노족계통인 위구르인이 따라 왔다.

 그는 고려의 산하가 너무 아름다워 고려에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귀화가 허락되었다. 고려 조정에서는 장씨(張氏) 성을 하사하고 이름을 순용으로 지었는 데 이 사람이 덕수를 본관으로 하는 덕수 장씨를 창설했다.

  덕수 장씨(德水 張氏)는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에서 유래한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장순룡(張舜龍)은 회회인( = 이슬람교도)으로 그의 아버지는 원나라 세조 때 필도치라는 벼슬을 했다. 

 장순룡은 1275년(충렬왕 1년) 충렬왕비인 제국공주를 배행하여 고려에 왔다가 귀화했다. 금자광록대부, 문하찬성사를 지내고 덕수부원군에 봉해졌다.

 《덕수장씨족보(德水張氏族譜)》와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그가 덕수현(德水縣)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으므로 후손들이 덕수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오늘날 까지 그 후손이 번창하는 가문들이 있는데, 덕수 장씨 · 경주 설씨 · 임천 이씨의 조상이 바로 고려 시대에 귀화한 대표적인 서역 이슬람출신이다.

 임천이씨 시조 이현, 경주 설씨 시조 설손도 위구르인으로 알려지고 있어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석유값을 뒤흔드는 산유국인 이슬람권 국가들과 한국이 협상해야 할 때 이런 사료를 잘 동원해서 우호관계를 맺으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다. 

 위구르인은 매우 총명하여 천문학이 크게 발달하여 우리나라 첨성대도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심지어 세종대왕이 코란 낭독을 즐기셨다고 한다. 

 당시에 이슬람권에서 천문학을 선도했기에 고려와 조선이 선진문물을 도입했다면 코란 낭독도 어렵지 않다. 코란 낭독은 음악과도 같아 들을 맛이 나고 따라하는 맛이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각국의 문자를 참조했다고 하니 코란의 아랍어도 접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려에 이어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이슬람인이 많아 신성한 경전을 읽고 매일 5번씩 기도하는 풍습을 유지하며 모여 살았다. 

2. 진시황과 유럽을 떨게 한 훈족, 투르크, 흉노, 돌궐족은 같은 기원

아시아와 유럽 및 중동에 광범하게 분포된 투르크족은 중국에선 흉노족 또는 돌궐족으로 불리웠고 기원전 7-8세기부터 중국을 끊임없이 침략, 약탈했다.

 진시황(BC221-206)시절에는 그들을 막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서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유럽에서는 투르크 계통의 훈족이 유럽북부의 게르만인들을 괴롭혔다. 

 게르만들이 이를 피해 남하하면서 로마와 대결하여 로마를 멸망시켰다. 그만큼 투르크 족은 오스만 제국을 형성하기 이전부터 동서양에서 강력한 위협세력이었다. 

 투르크족은 규모가 방대한 종족으로서 고대로 부터 중국의 변방에서부터 유럽까지 광범하게 분포하면서 중국과 유럽을 끊임없이 괴롭혀 온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선 이들이 너무나 무서워 투르크족 즉 훈족이 온다하면 농부들은 생계수단인 농기구까지 버리고 도망가고 우는 아이 조차 울움을 그쳤다는 말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4-5세기에는 유럽 여러나라를 점령하여 방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공물을 거두어 들이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마민족의 이동성과 강인한 전투력: 투르크 족은 말을 타고 유목생활을 하는 기마민족이어서 사람들이 대부분 말 위에서 생활이 자유로우며 달리는 말에서 활을 잘 쏘앗다. 

 그들은 일생을 말위에서 살았다. 말 안장에는 고기를 넣어두고 이동하면서 이것을 먹고 지내며 들쥐 가죽으로 만든 말 안장이 다 헤어질 때까지 말에서 내리지 않는 다는 말까지 있다. 이러한 유목민을 농경정착의 생활에 익숙한 유럽과 중국인들은 매우 두려워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7-8세기부터 소아아지역(= 터키, 튀르키예)으로 이주해 온 투르크인들은 토착민을 정복했다.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불(=이스탄불)에 수도를 둔 세계적 대제국 “비잔틴”(“동로마”) 제국과 대항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그리고 드디어 11세기 이후 아나톨리아(=터키)에서 “셀즈크 투르크” 왕국을 세웠다. 이들은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의 침공에 번번히 실패하자 주변의 발칸과 소아시아지역을 침공하여 고립작전을 폈다. 

 1299년에는 3중의 성곽으로 된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을 드디어 함락시켰다. 그리하여 15세기부터 세계1차대전 (1922)까지 500년가까이 동서양을 지배하는 대제국으로 형성했다. 이것이 오늘날 터키의 토대가 되었다.

 터키 국명은 투르크, 튀르크에서 온 단어이다. 터키가 2022년 국명을 튀르키예로 바꿨다. 터키인은 유럽을 떨게 한 조상들의 기원, 영광과 번영을 위해 국명을 투르크에서 유래하는 튀르키예로 바꾸었다. ​

 중앙아시아에서 온 투르크 족은 일찍부터 남 흉노족(투르크)과 북 흉노족(투르크)으로 나뉘었다. 남 흉노족은 아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북 흉노족은 훈족으로도 불리우는 데 유럽 동북부 쪽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남 흉노족은 중국쪽으로 진출한 “돌궐족”과 서쪽의 이란땅으로 진출한 “셀축 투르크 족”으로 양분되었다 합니다. 현재 터키인들의 조상은 남흉노족의 일부인 “셀축투르크(셀즈크 투르크)”인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게르만에 의한 로마의 패망: 아시아와 유럽 및 중동에 광범하게 분포된 투루크족은 중국에선 흉노족 또는 돌궐족으로 불리웠다. 기원전 7-8세기부터 중국을 끊임없이 침략, 약탈하여 진시황(BC221-206)시절에는 그들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유럽에서는 투르크계통의 훈족이 유럽북부의 게르만인들을 괴롭혀 이들이 이를 피해 남하하면서 로마와 대결하여 로마를 멸망시켰다. 그만큼 투르크 족은 오스만 제국을 형성하기 이전부터 동서양에서 강력한 위협세력이었다. 유목민족인 북흉노족은 훈족으로 불리우는 데 이들은 서기 4세기 중엽부터 볼가강 동쪽에 출현했다. 

 그리고 볼가강과 돈 강 사이의 평원지대를 지배하던 알라니족과 돈강과 드네스텐 강 사이에 있는 동고트제국을 정복하고, 서기 376년에는 현재 루마니아지역에 있는 서고트족까지 정복했다.

그 결과 140여년 동안 유럽 남동부와 중동부에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면서 유럽 여러나라를 침공하고 공물을 헌납받았다. 훈족은 게르만족 영역과 동 로마제국 침공했다. 훈족은 중부유럽에서 게르만 족을 물리치고 로마와도 전쟁을 하면서 영토와 영향력을 높였다. 

 동로마와 전쟁 중 434년 동로마 제국이 공물을 2배로 바친다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체결했고, 그후 콘스탄 티노풀을 침공하고 447년에는 동로마 제국을 침공하여 발칸반도를 정복하고 그리스의 북부 테르모 필라이까지 남진할 정도로 강성했다.

 훈 제국의 영토확장과 내부 분열: 훈 제국은 계속해서 동 로마제국과 협정과 약탈을 지속하고 전쟁포로를 로마에 팔면서 부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용병을 사들려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면서 유럽 여러나라를 괴롭혔다. 

 그러나 서기 451년 훈 제국은 그동안 피해를 받아 온 동로마-서고트연합군에 처음으로 패하고 453년 훈제국의 아틸라 황제가 죽자 여러명의 아들이 분할통치를 하면서 서로 다투다가 서기 455년 유럽의 여러 민족의 연합군에 패배하면서 사라졌다.

훈족과 헝가리: 훈족은 제국붕괴 후 유럽 여러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헝가리인의 조상이 훈족이라고 알려졌다. 런던에서 만난 코소보출신 친구가 있는데 코소보에서는 투르크어도 기본으로 말할 줄 안단다. 

3. 화산 이씨는 베트남계 귀화 성씨 

화산 이씨(花山 李氏)의 중시조는 베트남 왕족 이용상(李龍祥)이다. 시조는 베트남 리 왕조(이조)의 개국황제인 이태조 이공온(李公蘊·Lý Công Uẩn)이며, 중시조 이용상은 7대손이며, 6대 황제 영종 이천조(李天祚·Lý Thiên Tộ)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11~13세기 대월(=베트남) 이가 황족의 후손, 진씨가 제위를 찬탈하고 이가가 멸망할 때 멸족을 두려워한 황제 혜종의 숙부 이용상(李龍祥, Lý Long Tường)이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고려로 망명, 귀화하면서 그를 시조로 삼았다고 한다. 

다만 이용상이 고려에 귀화했다는 기록을 화산 이씨의 족보인 화산 이씨 세보에 의존한다. 진가 때 전조인 이가의 지배층을 몰살했기 때문에 이가의 후손은 정작 현지 베트남에는 남지 않고 한국에만 남아있다. 

 1996년에 베트남에서는 770년 만에 이가 후예들이 고향에 왔다고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베트남 정부에서 화산 이씨를 이가의 후예로 공식 인정했다. 

 베트남에서 살 경우 출입국관리, 세금, 사업권 등에서 베트남인과 동일한 특혜를 주고 이가가 출범한 음력 3월 15일이면 공식 행사까지 연다고 한다. 또한 화산 이씨를 본으로 둔 한국인들은 아예 (베트남에서) 베트남인으로 여겨 베트남 귀화 과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쉽다. 

 고려시대 정선 이씨가 12세기에 고려에 온 베트남의 왕자 리즈엉끈Ly Duong Con에 의해 창건되었다. 화산 이씨의 시조가 13세기에 고려에 온 베트남의 왕족 리롱뜨엉Ly Long Tuong이다. 

 2018년 주한 베트남 응웬 부 뚜 대사가 화산 이씨의 본거지를 찾아서 베트남 역사 최초의 통일왕조의 후손 흔적을 찾은 얘기들이 그 예이다. 그리고 막씨 가문도 베트남 후손이다. 한국의 막씨 가문의 시조가 14세기에 고려를 방문한 막딘찌Mac Dinh Chi라는 베트남 관료의 후손이다. 

고려에는 서해쪽의 국제 무역항 벽란도를 통해 아라비아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이들 중에 고려에 정착한 무리들이 있고 조선초까지 이어졌다. 조선에 확장되는 이슬람인 때문에 세종대왕은 이슬람 이주민 대책까지 현명하게 세웠다. 

 아무튼 이런 사례들을 잘 발굴하여 젊은 나라인 베트남과 한국이 오랜 인연을 이어서 서로 발전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면 좋겠다. 베트남전으로 인한 베트남의 피해도 위로하고 한·베트남 간의 혼혈아인 라이따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석유값이 고공행진 중인 가운데 이슬람 기름국들과 특히 터키(투르크, 튀르키예)와 이러한 역사를 그들과 잘 엮어서 국익을 도모하는데 활용할 일이다.

(참고문헌,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조흥국, 소나무,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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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삼국시대에 조상들은 이미 중국, 돌궐, 서역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벽화 각저총에는 투르크인과 씨름하는 고구려인이 그려져 있다.

한국에 있는 덕수 장씨와 경주 설씨의 유래는 고려시대에 귀화한 중앙아시아 출신의 백인 위구르와 투르크이다. 한국에 있는 막씨와 화산 이씨는 베트남인들이 고려에 들어와 귀화했던 베트남인의 후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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