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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

그리스신화•기독교의 원형은 인류 최초 수메르 문명 점토판 길가메시 서사시

서구 문명의 기본틀 두가지는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이다. 이 두 가지 모두에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수메르 문명이다. 수메르 문명은 세계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에서 알 수 있다.

 수메르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앞섰으며 문자로 기록을 남겼다. 길가메시 서사시 (敍事詩; Epic of Gilgamesh)는 고대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의 서사시로 수메르 남부의 도시국가인 우루크의 왕인 ‘길가메시(Gilgaméš)’에 관한 노래(서사시)이다.

1. 길가메시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敍事詩; Epic of Gilgamesh)는 인류 최초의 영웅 길가메시에 대한 서사시이다.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보다 1500년 가량 앞선 것이다. 길가메시는 영생을 갈구하고 방법을 쟁취했다. 

 그러나 결국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했다. 이것이 인간 운명의 본질인가. 삶과 죽음과 영생에 관해 이미 당시 사람들도 생각하고 고뇌했음을 알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 미국성서박물관

 히브리어(BC1000년 무렵에 기록)보다 더 오래된 기록 언어인 수메르어(BC3500~3000년 무렵에 기록)로 쓰인 (길가메시)빌가메쉬(Bilgamesh)는 의미상 ‘빌가(bil-ga)’와 ‘메쉬(meš)’로 구성되어 있다. 

 ‘빌가’는 ‘늙은이, 조상’이라는 뜻이고 ‘메쉬’는 ‘젊은이, 영웅’이라는 뜻으로 ‘빌가메쉬’는 이 둘이 서로 합쳐진 이름이다. 늙은이가 젊은이가 되다라니 회춘과 영생을 추구하고 그에 에 관한 이야기임을 제목에서 추론할 수 있다.

 길가메시는 대홍수가 지난 후 수메르 초기 우르크 제1왕조 때 5번째 왕으로 126년간 통치했다. 대략 BC 2800-2500년 사이이다. 기록이 맞다면 상당한 장수를 누렸다. 현대에도 기네스북에 오른 장수인은 백살이 훨씬 넘어 120살이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불명예스럽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할지도 모른다. -길가메시 발췌.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는 뜻인데 무엇이 명예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의 신앙은 섬기는 신에 따라 사제들이 혼인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거나 심지어 거세를 하는 등 성적인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곳도 있었고, 사제들이 종교적 절기에 따라 순례자와 동침하거나 약물에 취해 예언을 하게끔 하는 교단도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아프로디테의 여사제들은 순례자와 동침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예언으로 유명한 아폴론의 여사제 퓌티아는 지대에서 새어나오는 유황 가스를 마시고 취해서 예언을 했다는 설이 있다. 

 이슈타르는 아프로디테의 원형으로 여겨지기도 하니, 샴하트 역시 이런 유형의 사제였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경에도 사당에 속한 매춘부가 있고 제사장이 가족을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아슈르바니팔 왕. 신 앗시리아 제국의 군사와 문화의 최전성기를 만든 왕이다. 스메르어, 아카드어에 능통했고 수학을 잘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현재 이라크 북부 모술) 상상도. 거대한 왕궁과 지구라트가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 기원전 650년 점토판. 앗시리아 니네베에서 발견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되어 있다.

2. 길가메시의 배경인 우르에서 태어난 아브라함

우르(Ur= 우루크(Uruk), 바빌론 유적 등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핵심 지역이다. 5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원주민 마단(madan)이 태어난 곳이고, 앗시리안, 수메리안(수메르인), 바빌로니아 제국의 터전이었다.

 성서 속 히브리사람 아브라함은의 탄생지가 우르이다. 그는 우르를 출발해 유프라테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바빌론에 이른다. 우르(우루크)는 4500년 전 길가메시 서사시의 탄생지다.

 히브리인 아브라함이 가나안이 아니라 우르에서 태어난 것이 신기하다. 우르와 바빌론 그리고 가나안은 지리적으로 서로 근접해 있다. 수메르에서 그리스와 이집트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 소아시아(터키)와 가나안이었다.

 19세기 서남아시아 지방을 탐사하던 영국인 고고학자들이 수메르의 고대 도시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오랫동안 신화속의 인물로만 여겨졌는데 실제했던 인물로 판명되었다. 

3. 길가메시는 기독교 노아의 홍수의 원형

길가메시 대홍수와 관련된 상징이나 서사 구조는 기독교의 노아의 홍수의 원형을 연상시키고, 인간들이 괴로움이 극에 달할 때 신에게 기도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면도 구약과 유사하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원전에 먼저 존재했으니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유대교 기독교가 이를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길가메시 서사시를 서구 이야기 문화의 원형이라고 보고 중요하게 다룬다.

https://www.bbc.com/korean/news-58688972

 서구에서 이 서사시를 이토록 중시하는 이유는 기록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일 뿐 만아니라, 이야기를 형태적으로 분류하는 학문에서 인간의 이야기 중 가장 근본적인 점을 ‘무언가에 대한 추구’를 이야기로 엮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추구의 이야기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한 첫 번째 완성작이며 그후 모든 서구의 이야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서구학자들이 의견을 모았다. 

 실제로 서구의 이야기 중에는 상당수가 ‘추구’에서 이야기 원형이 만들어진 것이 많다. 참고로 추구의 이야기 원형 중 길가메시 서사시 이외에 중시되며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돈키호테나 이아손의 황금 양털 등이 있다. 인간은 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는 존재임에 이의를 달기 힘들다. 특히 유독 사색적이고 이타적인 유형들이 그렇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대홍수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후대의 이집트 신화가 보여주는 상징이나 서사 구조인, 인간 삶을 여정으로 보는 것, 사후 세계의 인정, 신적 인간의 유한한 생명과 부활, 동물혼의 묘사, 신적 존재와의 감응을 다룬다.

 이는 그리스신화도 그렇다. 대홍수는 기독교 이전에 여러 다른 고대 종교들과 메소포타미아 신화, 그리스 신화, 그리고 인도 신화에도 나온다. 

 타락한 인간들과 그들의 문명을 멸히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고자 한다는 홍수 신화는 물이 정화의 능력이 있으며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뜻과 상통한다. 

 업을 씻기 위해 갠지즈 강에 몸을 씻는 행위나 세례를 하는 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의미는 발명해서 부여하기 나름이다. 무언가의 원형을 서로 다른 문화와 지역에서 동시에 혹은 시대에 따라 생각해 냈을 수도 있다.

4. 길가메시 서사시의 판본들과 영국인 조지 스미스의 점토판본 해석

서사시 호모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긴 내용인데 비해 길가메시 서사시는 길지 않다. 그나마 표준 판본은 초기판본보다 2/3 가량이 긴 12개의 토판이 복원되었으며 훼손된 부분이 있어서 200줄도 채 남아 있지 않다. 11번째 토판에 홍수 설화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신들의 계보는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집트, 그리스-로마로 이어진다. 일주일에 해당하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요일은 수메르의 신 특히 태양신부터 시작된다. 

 입에서 입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각 따로 수천 년을 전해지던 길가메시에 관한 이야기들을 처음 채록한 이들은 수메르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따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적었을 뿐 지금처럼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서사시가 아니었다. 

 이렇게 파편적으로 채록된 이야기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바빌로니아 시대에 시간 순서대로 줄거리를 짜 서사시로 정리한 것이 현재의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길가메시의 일이 당시에 중시되던 춘분점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수메르 시대의 춘분점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시대의 춘분점인 황소자리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이런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도 페르시아 후손인 이란은 춘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잡고 Norooz축제를 한다. 

 수메르 왕의 연대기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하늘 최고의 신 안(An)을 모시던 대제사장은 태양신 우투(사마쉬)와 인간 여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태양신 우투와 사랑의 여신 인안나(이쉬타르)는 대제사장을 우르크의 왕으로 임명했다. 

 이후부터 제정일치를 의미하는 성직자-왕이 통치하는 왕조가 이어져 내려갔다. 사마쉬 아들이 324년 통치했고, 우루크를 건설한 사마쉬의 손자가 420년 통치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왕인 길가메시가 왕이 되었을 때 우르크는 수메르의 중심이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현재까지 두 개의 판본이 남아 있다. 초기 판본은 기원전 18세기 구바빌로니안 버전으로 <모든 왕을 능가하는 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불과 몇 개의 흙(토) 판이 남아 있다. 

 이후에 나온 서판을 표준 판본(Standard Version)이라고 하며 기원전 13~10세기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18세기에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이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로 등장한다. 

 아카드어를 사용하는 이들 바빌로니아인들도 함무라비 왕의 재위 기간에 길가메시에 대한 전설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 기록을 지금까지 알려진 주요 아카드어 판본 중 가장 오래된 한 구절을 따서 “모든 다른 왕들을 능가하는 왕(Surpassing all other kings)”이라 부른다.

 표준 점판(토판)은 신앗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이 정한 수도 니네베(Nineveh)의 궁전 도서관(Royal Library of Ashurbanipal)에서 발굴되었다. 발굴 당시 3만 개의 토판이 나왔는데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중 12개에 쓰여 있다.

 심연을 본 자 He who saw the deep. (현대식으로 모르는 것이 없는 자 He Who Sees the Unknown)라는 글로 시작되기 때문에 표준 서판을 ‘심연을 본 자’ 버전이라고 부른다. 심연이 뭐길래 그 심연을 알면 모르는 것이 없는 자가 되는 걸까.

 우누그(수메르어: 𒌷𒀕) 또는 우루크(아카드어: 𒌷𒀔)는 유프라테스 강 동쪽으로 고대의 “닐”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습지대에 위치한 수메르계통의 도시국가이다. 

 이 위치는 현재의 이라크 영토인 무탄나 주의 사마와에서 동으로 30km지점에 해당한다. 이라크라는 이름이 “우루크”에서 파생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우루크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이자 영웅인 길가메시가 다스리는 도시국가였다. 《성경》(창세기 10:10)에 따르면, 에렉(Erech), 즉 우루크는 님로드(Nimrod)가 시날(Shinar) 땅에 세운 두 번째 도시이다. 

 우루크는 아카드의 사르곤 왕 이전 시대에 강력한 패권을 장악하였고, 후반기(기원전 2004년)에는 엘람인과 치열한 경쟁 관계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길가메시 서사시》에 문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전성기 우루크의 인구는 5~8만 명, 성벽 내의 크기는 6 제곱km 정도로, 당시로서는 가장 큰 도시였다. 현재까지 우루크는 밀집된 인구를 가진 세계 최초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우루크는 전문 관리, 군인 등으로 계층화된 사회를 이루며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 시대를 열었다. 1852~1853년 처음으로 발굴가 호르무즈 라삼과 영국의 탐사팀이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수도 니느웨(니너베)에 세운 니네베 도서관에서 아카드어로 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을 발굴하였다. 

 이것은 대영박물관에 기부되어 수장고에 방치되었다가 이십년이 지난 1872년 조지 스미스가 홍수에 관련된 점토판 내용을 번역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수메르어 판본이 발굴되었고 아카드어 판본과 내용을 대조하였다.

 김산해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보면 저자는 2003년 4월 29일 영국 BBC 방송 인터넷판의 기사도 소개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묘사된 것과 유사한 무덤이 실제로 발굴된 것이다. 

 하인리히 슐리만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노래한 전설 속의 트로이를 실제로 발굴해냈고, 베레쉬트에서 히브리 저자가 감추어 기록한 수메르의 전설적인 도시들도 거의 다 발굴되었다. 

 학자들에 의해 길가메쉬는 전설적인 영웅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인 영웅으로 드러났다. 전설로 끝날 것이 발굴가와 학자들에 의해 존재가 증명되었다. 전설은 단지 전설이 아닌 것이다.

 길가메시의 일생에 관한 전설은 시로 만들어져 구전되었는데, 기원전 21세기경 우르 왕이었던 슐기 때, 특히 길가메시에 대한 많은 시들이 지어졌다.

 그때까지 구전되던 시 몇 편이 이 무렵에 설형문자로 점토판에 처음 기록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18세기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길가메시(빌가메시)에 관한 시 다섯 편의 일부가 현재 전해지는데 모두 슐기 왕 시대에 기록된 시들의 사본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300년과 1000년 사이 신레케운니니(Sin-leqe-unnini)라는 시인이 그때까지 전해지던 길가메시 전설을 하나의 서사시로 편집했다. 이것이 아카드어 판본이고 오늘날 표준판이 이것이다.

 이 판본은 첫 행을 따 “깊은 곳을 본 이(He who saw the deep)”라고 불린다. 그 후에 발견되는 여러 판본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표준판을 기초로 한 것으로 간주된다.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판본은 니네베에 있는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재위 기원전 668년-627년)의 서고(도서관)에서 발견된 12개의 점토판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히 전하지 않아 학자들은 부분적으로 전해지는 여러 판본으로 전체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성경에서 신은 사악해진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킨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포함된 우트나피시팀의 이야기에서 신은 인구수가 너무 많아지고 소란스러워진 인간들을 벌하려 한다. 이 두 이야기는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수메르 왕 목록표를 보면, 길가메시는 리라의 아들이며 127년간 재위했다. 단, 후세의 신화에서는 루갈반다의 아들로 바뀌었다. 길가메시와 함께 등장하는 엔메바라게시가 실제 인물이었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길가메시도 실재인물임을 이미 추정할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신화에 등장한다. 길가메시는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격화 되어 수많은 신화 및 서사시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을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불리는 하나의 설화로 정리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많이 알려진 수메르 문학이다.

 길가메시는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인데, 지나치게 혈기왕성하고 여성을 탐했으며 거만했다. 온 세상을 둘러보고 우루크로 돌아온 후,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다는 사실에 취해 자만에 빠졌다.

 백성들을 강제 노동을 시켜 괴롭히고 싸움잘하는 남자들과 겨루며 악행을 일삼았다. 그리고 결혼하는 처녀들의 첫날밤을 자신이 대신 치렀다. 중세시대 droit du seigneur 드르와 두 세이예르, 초야권이 있었다. 

 초야권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파가로의 결혼에도 나온다. 이에 보다 못한 우루크인들은 신에게 길가메시와 동등한 자를 만들어서 길가메시에게 대항할 수 있기를 간청했다. 

 이 기도를 들은 아누신이 창조의 여신 아루루Aruru(바빌론 대지의 신, 수메르의 닌후르쌍)를 시켜 엔키두라는 남자를 창조했다. 엔키두는 매우 강했으며 몸이 온통 털로 덮여 있었고 머리카락이 길며 몸은 황소처럼 생겼다. 

 난폭하고 거칠어서 우루크인들에게 길가메시보다 더욱 험난한 존재가 되었다. 엔키두는 야생에서 동물들과 함께 생활했다. 풀을 먹고 동물과 함께 물도 마시며 사냥꾼의 올무도 부셔버렸고 잡힌 동물을 풀어주었다. 동물들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엔키두는 동물들과 같이 풀을 뜯고 물웅덩이 근처에서 살았다. 얼마 안가 희한한 짐승이 있다는 이야기가 우루크에 퍼졌다. 사냥꾼은 태양신 사마쉬에게 엔키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마쉬는 신전의 창기 샤마트(Shamhat)를 소개해서 엔키두를 유혹하게 한다. 6박 7일(또는 2주간) 동안 사랑을 나누었다. 7일이 지나서 엔키두는 황홀경에서 깨어났다.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동물들은 엔키두를 보고 두려워서 도망가버렸다. 이에 샤먀트가 말하길 “당신은 지혜로워졌어요, 엔키두. 이제 당신은 신처럼 되었어요.

 (중략) 아누와 이슈타르의 신성한 신전으로, 길가메시가 사는 곳으로 모시고 갈게요. 왕은 워낙 강해 야생 황소마냥 젊은이들에게 자기 힘을 과시한답니다” 엔키두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우루크에 도착하고, 백성들의 호소를 듣고 분노하게 되었다. 

 한편 길가메시는 ‘하늘에서 안Ann의 물건이 떨어진 꿈’에 대해서 그의 어머니 닌순 여신에게 해석을 청한다. 꿈쩍도 하지 않는 물건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너를 구원할 힘센 동료’의 도착을 예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땅에서 가장 힘센 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절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곧 그에 대한 이야기는 길가메시의 귀에도 들어간다. 길가메시는 어느 누가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겠냐며 엔키두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샤 마트는 엔키두를 양치기들의 숙소로 데려와 그곳에서 인간의 음식을 알려 주었다. 엔키두는 야간에 양을 지키는 경비원이 되었다. 어느 날 지나가는 사람으로부터 길가메시가 결혼식 첫날 신부와 잠자리를 하는 초야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알았다. 

 엔키두는 격분하여 우르크로 가서 결혼식에 개입한다. 길가메시가 결혼식장에 들어오려 하다 엔키두는 길을 막고 싸우기 시작한다. 둘을 황소처럼 서로를 잡아끌었다. 

 벽이 흔들리고 문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길가메시 어머니가 말한 힘센 친구가 바로 앞에 있는 자였다. 두 사람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에게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엔키두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아파 비통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길가메시에게 운명을 바꿀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신들의 처소에 비밀리에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만약 태양신 사마시와 천둥과 폭풍의 신 아다드가 길가메시를 돕는다면, 다른 신들도 그에게 신의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엔키두가 말한 신들의 처소는 삼나무 산에 있었다. 아직 태양신으로부터 확실한 지원 약속을 받지 못한 길가메시는 어머니 닌순 여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길가메시는 닌순 대궁전에 찾아갔다.

오, 나의 어머니여! 저를 위해서 사마쉬에게 기도해 주시옵소서! 닌순 여신은 그들의 모험을 위해 태양신 샤마쉬의 지원과 보호를 구한다.

“당신은 왜 나에게 불안한 마음을 가진 길가메시를 아들로 주었습니까? 이제 당신 때문에 내 아들은 훔바바(후와와)가 있는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사마쉬에게 길가메시를 보호해 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닌순은 엔키두를 아들로 입양하고 자신의 상징물을 엔키두의 목에 걸어준다. 길가메시는 부재중에 우루크의 통치 지침을 남긴다.

엘림(삼목) 산의 훔바바를 무찌르러 가는 중 훔바바가 막강해서 두 사람은 미리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태양신 샤마쉬는 자신의 신전을 그 산에 짓고 싶었으나, 엔릴의 명령으로 산지기가 된 훔바바를 직접 죽일 처지는 아니었다. 

 엔릴이 신들의 실권자이고, 그에게 7개의 후광과 명령을 받아 산을 지키던 자가 훔바바였기 때문이다. 결국 샤마쉬/우투는 때마침 그 구역까지 영토를 넓히고 싶었던 길가메시를 부추기는 방법을 썼고, 길가메시가 엔키두와 함께 훔바바를 무찔렀다. 

 엔릴 신의 대리자로서 7개의 후광을 가진 훔바바는 길가메시에게도 버거웠는지라, 길가메시는 정면 승부를 피하고 친구가 되자느니, 여동생을 아내로 주겠다느니 온갖 감언이설로 방심하게 만든 뒤에 기습해서 쓰러뜨렸다. 이에 훔바바는 “영웅이라는 놈이 속임수를 쓰다니!”라고 비난했다.

길가메시가 훔바바를 무찌르러 가자고 할 때는 만류했던 엔키두는, 훔바바를 잡은 길가메시가 훔바바의 애원에 측은함 내지는 죄책감을 느껴 살려주려고 하자 “후환이 두려우니 당장 죽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일은 이후 엔키두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엔키두가 짐승으로 지내던 시절, 훔바바와 친구였으니 홈바바가 얼마나 비통한 마음으로 죽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훔바바는 죽어가며 엔키두를 저주했다. 엔키두는 이 세상에서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며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길가메시는 훔바바의 목을 자르고 그의 아들 7명도 죽이고 많은 삼나무를 베었다. 엔키두는 엘릴 신전의 문을 만들 큰 나무도 베었다. 그들은 뗏목을 만들고 거대한 나무와 훔바바의 목을 싣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길가메시에게 반한 이슈타르가 유혹한다. 그러나 거부와 모욕을 당한 이슈타르가 아버지인 천신 아누(Anu)를 찾아갔다. 

아버지시여, 

구갈라나(Gugalanna)를 내게 보내주소서. 길가메시와 그의 도시를 멸망시키고자 하나이다. 만일 구갈라나를 내게 허락치 않으신다면 지옥의 문을 부숴버리고 죽음이 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에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내어줄 것입니다. 

 구갈라나는 하늘의 황소(The Great Bull of Heaven)라는 뜻인데, 저승의 여신인 에레스키갈(Ereshkigal)의 첫번째 남편이다. 하늘의 황소가 나타나서 대지를 황폐하게 만들고 성을 부숴 많은 백성들이 고난을 당한다.

 결국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나서서 하늘의 황소를 무찌르게 되는데, 길가메시는 신의 짐승이라 망설였으나 엔키두가 나서서 황소를 죽인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황소 구갈라나를 죽였고 그의 심장을 꺼내 태양의 신 샤마쉬(Shamash)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슈타르의 호소로 인해 12신들이 모여서 회의가 했다. 신이 만든 피조물을 죽인 것은 신들의 능력에 도전이라고 간주되었다. 길가메시는 신의 피가 섞인 자라 죽일 수 없었으므로, 결국 그들의 창조물인 엔키두가 죽는 걸로 결정이 된다. 

 엔키두는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 때 길가메시의 품에 안겨서 죽었고 이후 시체에서 벌레가 나올 때까지 그 시체를 길가메시가 안고 있었다. 징벌로 엔키두가 대표로 죽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길가메시가 대신 죽어도 엔기두 역시 영생을 찾아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신들이 길가메시를 죽일 수는 없어도 길가메시는 자연사한다.

 엔키두의 마지막 넋두리가 인상적이다.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죽을 수 없다니”라는 탄식 끝에 죽고 만다. 영웅이 죽을 자리는 전투인데 이깟 병에 걸려 병석에서 죽다니. 영웅이 뭐길래 이리 투철한 신념을 가졌을까. 서양인들은 영웅에 예나 지금이나 환호한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에 상심했으며 죽음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이에 그는 영생의 비밀을 발견하기로 결심하고 영웅 우트나피슈팀을 찾아 나섰다. 

 인간이면서 예외적으로 영생하는 존재가 있다니 희망이 있다. 도교로 말하면 신선인가. 도교는 장생불사를 추구한다. 우트나피슈팀Utnapishtim은 대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이고, 신들에 의해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우트나피시팀은 생명을 찾은 자 또는 멀리 있는 자(the Faraway)라는 뜻이다. 우트나피쉬팀은 고대도시 슈르박 출신이라고 한다. 

 땅의 신 닌후르쌍과 지혜의 신 엔키가 흙으로 만든 사람들은 신들을 경배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신들을 더 이상 모실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쳤다. 

 이에 신들이 회의를 해서 자신들이 창조한 인간들을 다 쓸어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물의 신이자 지혜의 신인 엔키(에아)만은 반대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엔키(에아)가 우트나피쉬팀에게 나타나서 큰배를 만들라고 했다

 여행길의 여인숙 주인이 길가메시에게 삶은 그저 단순하고 유쾌한 것이며 ​영원한 생명 따위는 구할 수 없으니 가족에게 돌아가 그들을 기쁘게 해주라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길가메시가 굽히지 않자 우트나피시팀이 살고 있는 섬에 가려면 죽음의 강 후부르(Hubur)를 건너야 한다며 뱃사공 ​우르샤나비(Urshanabi)​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루샤나비의 도움으로 ​오랜 방랑 끝에 마침내 길가메시는 세상의 끝에 있는 마시(Mashu)산에 도착했다. 입구에 다다른 길가메시는 문을 지키는 전갈 인간들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길가메시가 절반은 신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길을 열어주었다. 죽음의 강은 무엇이고 세상의 끝은 무엇인가. 길가메시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우트나피슈팀은 바다의 밑바닥에서 자라는 불로초에 대해 일러주었다. 

 하지만 길가메시가 몸을 구부려 불로초를 뽑자마자 뱀 한 마리가 훔쳐가버리고 말았다. 뱀은 약초를 먹자마자 허물을 벗고, 젊음을 되찾았다. 결국 종반에 엔키두의 망령이 나타나 명계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길가메시에게 이야기한다.

또다른 판본에는 다르게 쓰여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보잘 것 없는 여인이 거지꼴의 그를 보고 충고를 하였다.

 ​<길가메시여, 당신은 생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죽음도 함께 붙여 주었지요.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밤낮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아줄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안에 꼬옥 품어주세요. 왜나하면 이것 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여관의 여주인 시두리는 태양신 사마쉬만 건널 수 있는 죽음의 바다를 건너려 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한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라고 말한다.

 “그런 허무한 생각은 버리고, 차라리 궁궐로 돌아가 노는 게 낫다. 신들은 불로불사지만 그런 즐거움은 누리지 못한다”라고 했다. 의미심장하다. 

길가메시여, 그대 어디로 유랑하는가?

그대가 찾는 생명을 그대는 결코 찾을 수 없을진대.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들은 죽음을 인간의 몫으로 정하고 

생명은 자신들의 몫으로 남겼기 때문이라네

길가메시여, 그대 배나 채우게

낮이나 밤이나 즐기며,

하루하루를 즐거움에 넘치게 하게.

낮이나 밤이나 춤추고 노래하고,

그리고 새 옷을 입고

그대의 머리를 감고 목욕하며, 그대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대의 아내를 껴안아 즐겁게 하라.

이러한 일들만이 인간이 가질 관심이로다.

 히브리의 율법학자들도 무슨 이유인지 이 서사시의 시구를 받아들였다. 인간이 신들의 영역을 침범할까봐 미리 인간을 한계에 가두려고 모사한 신들의 한수일까.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이미 신들에 의해 세뇌되어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알고 현실을 중시하며, 살아있는 나날에서 축복을 느껴서 그런 건가. 

 같은 조건에서도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유독 밝고 유쾌한 사람들이 있다. 알지 못하는 사후를 미리 걱정해봐야 득이 없다. 

<길가메시여, 당신은 생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죽음도 함께 붙여 주었지요.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밤낮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아줄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안에 꼬옥 품어주세요. 왜나하면 이것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그러나 길가메시는 그 충고를 한귀로 듣고 우트나피쉬팀의 거처를 수소문하여 찾아간다. 왕자로 태어나서 온갖 환락을 누리다가 생로병사하는 인간의 운명을 거부하고 방법을 찾기 위해 왕궁을 나간 석가모니가 연상된다.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시에게 인간이 공통적인 운명인 죽음과 싸우는 것은 부질없고 삶의 기쁨을 감소시킨다고 단언한다. 자신은 불사의 존재면서도 길가메시에게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도 길가메시가 애원하자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면 영생의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끈기있는 자를 못당한다. 그러나 길가메시가 도중에 잠들었다. 

 깜박 잠들었다면서 핑계댈지 모른다며 우트나피시팀이 아내에게 길가메쉬가 잠든 시점에 빵을 만들게 하는데, 그 빵이 상할 정도로 오래 잤다. 우트나피시팀이 “잠을 못 이기면서 어찌 죽음을 이기려드나”했다. 죽음을 잠에 비유한 것이다. 

 어느 신화에서든 인간을 측은히 여기는 신들이 있다. 무엇인 이런 연미을 일으키는 것인가. 길가메시를 측은히 여긴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길가메시에게 선물을 주라고 부탁했고, 우트나피쉬팀은 불로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다. 

 불로초를 얻은 길가메시는 이 불로초를 그자리에서 혼자 먹을 것이 아니라 우루크로 가져가서 모든 노인들에게 나눠주어 모두 회춘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서 방심하며 목욕하다가 뱀이 불로초를 몰래 훔쳐먹어 껍질만 남겨두고 도망갔다. 

 우루크로 돌아와서 깊은 탄식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길가메시는 꿈 속에서 신들을 만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죽으면 저승의 왕이 될 수 있으니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꿈에서 깬 길가메시는 자신의 여태까지의 행적을 돌에 새긴 후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의연하게 죽는다.

“그렇다하여 슬퍼해서도, 절망해서도,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너는 이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고난의 길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너는 이것이 너의 탯줄이 잘려진 순간부터 품고 있었던 일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날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인간의 가장 고독한 장소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멈추지 않는 밀물의 파도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피할 수 없는 전투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로 인한 작은 접전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러나 너는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갖고 저승에 가서는 안 된다. 김산해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2부

 <길가메쉬 서사시>저자들은 수천 년 동안 꾸준히 서로 표절과 개작을 해왔다. 그 중에는 히브리의 저자들도 있었고 그리스의 저자들도 있었다. 표절과 개작은 메소포타미아 문학의 특징이었다. 

  이 서사시는 수메르어, 아카드어, 히타이트어, 후리어, 엘람어, 히브리어 등으로 쓰였다. 히브리의 <베레쉬트>,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일과 날들>, 그리고 <아라비안나이트> 등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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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는 최초의 문명국 수메르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전통과 관습, 그리고 세계관을 알려주는 문화적인 공통 원형이다. 또한 이는 그리스신화와 기독교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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